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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06년 1월 14일][기고] 겨울 숲 찬바람의 진리

작성자: 숲연구소

조회: 16979 등록일: 2014-04-08

[기고] 겨울 숲 찬바람의 진리 
 
겨울숲을 거닐어 본 적이 있는가. 모든 생명체를 잠재워버릴 만큼 참혹하고 냉정하게만 느껴지는 겨울의 찬바람은 누구에게도 성역을 허락하지 않는다. 나약한 생명체에게는 봄의 따스함을 만끽하지 못하게 하는 이런 가혹함이 겨울숲의 진정한 모습이다. 겨울이 가혹하면 할수록 봄날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숲은 알고 있기 때문에 겨울숲은 그것을 용케도 감내하고 있다. 작금의 우리 사회는 겨울이다. 황우석 사태가 몰고온 찬바람이 우리 사회를 얼어붙게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겨울에서 제대로 배우느냐 아니냐에 따라 봄을 맞을 수도, 맞지 못할 수도 있다.
 
연구논문이나 학위논문이라는 것은 연구자의 진실된 연구과정을 통해 타인에게 그 결과를 발표하고 인정받는 결과물이다. 그 결과물은 직접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치면서 사회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영역이 있는가 하면, 간접적으로 장기간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대부분 자연과학분야에서, 후자의 경우 대부분 인문과학분야에서 나타난다. 독일에서는 누군가가 연구 결과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경우를 대비해 연구자가 향후 5년간 관련 자료를 보관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연구논문의 가장 기본은 진정성과 타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결여된다면 황우석씨뿐 아니라 이 사회에서 자칭 ‘학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존재가치가 사실상 없어진다. 아마 우리나라 학자라면 이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학창시절 나는 학교 본관 앞에 적혀 있는 문구를 종종 읽곤 했다. ‘진리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The truth will set you free).’ 최소한 학자라면 양심을 바탕으로 손익이 아닌 진리를 통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당당하게 진리를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온갖 언어의 기교와 유희로 세상을 혼탁하게 해서는 안된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이런 현상은 학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계나 언론계, 종교계 등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진실불감정은 오래전부터 지적돼온 바다. 과연 이 사회에서 이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있는 분야가 얼마나 될까.
나이를 먹어갈수록 자라나는 청소년들이나 어린 아이들에게 늘 부끄러운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런대로 죄짓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무엇인가 켕기고 눈을 바로 바라볼 수 없는 때가 종종 있다. 그것은 과거에 수없이 되풀이됐던 잘못된 과거를 통렬한 반성없이, 유야무야,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해결했던 나의 부끄러움이다. 아니 우리사회 전체의 부끄러움일지도 모른다.
진정 누구나 상식선 안에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길 원한다면,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면, 아프지만 숲을 다스리는 냉정하고 차가운 겨울바람이 필요하다. 지금도 겨울숲에는 찬바람이 훑고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 바람에 아니 쓰러지듯, 튼튼하고 건강한 정신과 통렬한 자기반성이 있다면 우리는 진정 내년 봄에는 훨씬 더 자라난 겨울숲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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